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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인조 임금에 대해서

by 연풍연가99 2018.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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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전에 정말 답답한 시기였던 선조임금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번에는 그 이상인 인조임금입니다. 

오죽하면 표지모델도 임금이 아닌  당시의 명신이었던, 김상헌과 최명길 이네요. ㅋ



일단 그는 처음에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모든 것을 광해군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형제들을 죽인 광해군과는 반대로 형제들에 대해서 관용을 베풉니다. 


추가로 자신의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통성을 높여보고자 자신의 아버지인 정원군(선조의 서자)을 왕으로 격상시키고 더불어 자신의 어머니도 왕후로 올리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것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사이에 있던 일이니 그의 답답함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전왕인 광해군은 위의 가계도에서 선조의 후궁인 공빈김씨의 둘째 아들입니다. )



우리 역사 중 최악의 굴욕적인 장면의 하나인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저렇게 큰 굴욕을 겪고, 



두 아들 (소현세자, 봉림대군)은 청으로 볼모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와중에 두 아들 중 첫째인 소현세자는 자신의 아버지인 인조와 반대로 워낙 똑똑하고 훌륭해서 청나라에서 신망이 두터웠다고 하네요.



비록 극중의 묘사이지만, 실제로도 저렇게 청에서는 그 굴욕을 준 인조보다는 청나라에 와서 어느 정도 교육도 받고, 교류도 있던 소현세자가 왕이 되기를 바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원나라와 달리 조선의 임금 선택 같은 일은 하지 않지요. (인조로서는 다행이고, 조선 백성들 입장에서는 불행이구요)





저렇게 똑똑한 소현세자였지만,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인조의 질투로 얼마 살지 못하고,  아내인 세자빈 강씨,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며, 인조에게는 손자인 2명의 아들들 마저도 죽게 됩니다.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현세자는 독살되었다고 보는 설이 많습니다. 


박시백 작가의 평처럼 인조는 준비된 군주가 아니었고,  설사 등 떠밀려서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왕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실력을 키울 마음은 없고, 남탓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광해군 이상의 패륜왕이었어요.  아들 죽이고, 며느리 죽이고, 손자 죽이고.  

그나마 정치력이라도 있어보였던 선조보다 더 답답하지요.




선조도 왜란을 끝내고 정신 못 차리고 젊은 여자를 중전으로 앉혔고, 인조 역시 마찬가지에요.  거기다 인조는 총애하는 후궁이 전횡을 일삼게 되니,  그녀가 유명한 '소용 조씨'입니다. 



도대체 '어질 인'자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왕 인조였습니다. 


공신 단속을 잘못해서, 역도에 의해 서울이 점령당했고, 두번의 호란을 역시나 서울을 버리고 도망쳤지요.  

자식을 죽이고, 며느리를 죽이고, 손자들을 죽이고. 


특히 나쁜 것은 삼전도에서 그런 큰 굴욕을 당했음에도 자신의 아들인 효종과 달리 그들과 제대로 싸우거나, 아니면 막을 계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효종의 북벌계획은 정말 청나라를 정벌하기보다는 국방력을 키우기 위한 명분으로, 효종은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끝까지 백성들을 외면한 것입니다. 


인조. 정말 나쁜 임금이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감버튼 한번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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